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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이야기

대한민국 연쇄 살인마 유영철

by 이야기 상자 2025.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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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철은 2003년 9월부터 2004년 7월까지 서울 일대에서

20명을 살해한 연쇄 살인마이다. 그의 범행은 한국 범죄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사건 중 하나로 꼽히며, 수법과 동기,

범죄 심리 분석 에서 많은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1, 유영철의 성장기

1970년 4월 18일, 부산에서 태어난 유영철은 어린 시절 

가난과 가정폭력 속에서 성장했다. 부모의 불화로 인해 

조부모 손에 자랐으며, 청소년기에는 비행을 일삼았다.

학교를 중퇴하고 여러 차례 절도 및 강도 범죄를 저질러

교도소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는 1988년 첫 절도 혐의로

구속된 이후, 수차례 수사와 재판을 받으며 폭력과 범죄에

익숙해 졌다.

 

결혼 후에도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하고 도박과 범죄로

일관했다. 결국 아내와의 이혼 후 복수심과 증오가 증폭되며

범죄로 이어졌다. 그는 자신을 버린 사회와 부유층, 그리고

여성에 대한 강한 적개심을 갖게 되었다.

2. 범행 과정

유영철은 2003년 9월부터 본격적으로 살인 범죄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강남과 서초 등지의 부유층 노인들을 상대로 범행을

저질렀다. 그는 부잣집을 털고 노인을 무참히 살해하는 방식으로

증오심을 표출했다. 그러나 점차 목표가 바뀌어 성매매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연쇄 살인을 저질렀다.

 

그의 범행 방식은 너무 잔인했다. 피해자를 둔기로 내리쳐 

살해한 후 시신을 훼손하는 패턴을 보였다. 그는 주로 성매매

업소에서 여성을 불러들인 뒤, 자신의 오피스텔에서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3.검거와 수사 과정

2004년 7월 15일, 경찰은 실종 신고가 들어온 성매매 여성 

사건을 조사하던 중, 유영철을 용의자로 특정 지었다. 

경찰은 그의 휴대전화 통화 기록과 모텔 CCTV를 통해 그를

추적했고, 같은 달 15일 서울 낙산 공원 근처에서 체포했다.

 

체포 후 그는 경찰 조사에서 26명을 살해했다고 주장하였으나,

수사 결과로는 20건의 살인이 입증되었다. 조사에서 그는 

범행을 담담하게 진술하며 반성의 자세는 보이지 않았다.

 

4.형벌

유영철은 2004년 9월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으며, 현재까지

복역 중이다. 대한민국에서 사형제도가 있지만 1997년 이후

집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무기수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

5.사회적 영향

유영철 사건은 그 당시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고, 연쇄 살인범에 

대한 심리 분석과 수사 기법의 발견과 발전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실제로 연쇄 살인범을 탐지할수 있는 프로파일링 기법이 유영철 

사건을 계기로 많이 발전하였다. 

그의 범죄 동기는 개인적인 원한, 사회에 대한 복수심, 그리고 살인

자체에서 느끼는 쾌락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특히 성매매 여성과

사회적 약자를 주 타깃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사회 구조적인 문제들도

함께 제기 되었다. 

 

6. 마지막 글

유영철은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연쇄 살인마 중 한명이다.

그의 범행은 사회적으로 큰 충격과 깊은 영향을 남겼다.

그의 사건은 단순한 범죄가 아니라, 한국 사회가 가진 계층간 갈등,

범죄자의 심리적 요인, 그리고 수사 기법의  중요성을 다시금

환기시킨 사례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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