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987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모티브로 한 실화 영화인데요.
이번 포스팅에는 고문치사 사건을 둘러싼 전후 대한민국의 정치 정세와 내용을 살펴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의 총탄에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한후에
길고 길었던 독재가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때 당시 국무총리였던 최규하가 10대 대통령에 당선되게 됩니다.
그러나 며칠 지나지 않은 그해 12월 12일날 전두환은 군권력을 이용해 계엄사령관 정승화를 체포하고
신군부를 기반으로한 쿠테타를 일으켜 정권 장악을 자행하게됩니다.바로 12.12사태입니다.
전두환은 힘을 갖기위해 언론을 회유하고 군부 세력의 정치 참여를 정당화 하기위해 온힘을 기울이게 됩니다.
진급을 자행하며 정부기구를 장악하여 본격적으로 국내정치에 개입하기에 이릅니다.
민주화를 지지하고 열망했던 국민들은 신군부의 정권 침탈에
불만을 토로하고 이러한 여론은 자연스럽게 정권을 향항 반감과 비판으로 이어지게됩니다.곳
정부를 비판하는 여론이 들끓게 되고 이렇게 형성된 힘은
시위와 데모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됩니다.
하지만 국민들의 민주화에 대한 간절한 염원과는 반대로 신군부세력은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국민들을 탄압하기에 이릅니다.
정부에 비판하는 이들은 입을 막고 시위하는 대학생들을 억압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휴교령까지 내리며 힘이 모이고 집중하는 것을 원천봉쇄 해버립니다.
이러한 핍박에도 대학생과 국민들의 불만은 더더욱 쌓이게 되고
1980년 5월경 부터는 본격적인 가두시위가 시작됩니다.
이에 위기감을 느끼게된 군부세력은 급기야 군병력 및 공수부대원들을 투입해서
강경하게 진압할것을 준비하게 되며, 주요 시위지역 곳곳에 병력을 배치하게 됩니다.
5월 17일 강경하게 진압할것 그리고 검거할것등을 지시하고 비상계엄을 확대하는 조치를 시행하게 됩니다.
이때 군병력이 배치,투입되어 시위하는 전남대 학생들을 무자비하고 과격하게 진압하게 되고
이런 장면들을 본 광주시민들은 함께 분노하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잘알고 있는 5월 18일 민주화운동 시위대열에 그들은 본격적으로 동참하게 됩니다.
폭력 진압과 과격한 검거 끝에 수많은 피해자가 발생하게 되고
전두환은 광주를 진압 통제하고 정권을 장악하는데 온힘을 기울이게 됩니다.
헌법질서를 무시하고 언론을 통제하며 반대세력을 숙청하고 갖가지 불법적인 행위를 자행합니다.
..
대통령 선거는 7년 단임제를 선택하고, 선거 방식은 간접선거 즉, 선거인단에 의한 선출방식으로 1981년 2월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이후 정권 말기인 1987년 헌법을 수호한다는 취지 아래 선거 간선제와 7년 단임제를 계속해서 하겠다는 호헌방침을 내놓게 됩니다.
하지만 국민들이 원하는것은 국민들이 직접 투표를 통해 뽑는 직선제 였습니다.
이로 인해 직선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직선제를 위한 시위가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다시 일어나게 됩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1987년 1월 14일 박종철 열사가 모진 고문 끝에 숨지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전두환 정권의 탄압속에서 '민주화추진위원 사건' 관련 사건의 수배자인 박종운의 소재 파악을 위해
박종철을 검거하여 모진 고문을 가했던것입니다.
어떻게든 은폐하려고 온갖 비열한 방법을 총동원했지만 결국 사실은 밖으로 새어 나가게 됩니다.
이 사건은 전두환 정권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게 되고
다가오는 10.26사태에도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이상으로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의 전후 정치적 배경에 대해서 간략히 알아봤습니다.
영화 스포내용이 있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영화로 보면서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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